2008년 08월 18일
ⓧ노란 잠바
짤방은 열아홉 살의 나에게 입혀주고 싶은메타모르포제(이하 '메타몰') 빈티지 체리 티어드 드레스.
요기↓서 트랙백.
개구리가 돌맞고 나면..
피해망상
대학 신입생 시절, 내 별명은 '노란 잠바'였다.
내가 직접 그 별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누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신입생 때 네 별명이 '노란 잠바'였던 걸 아느냐고.
딸이 대학 간다고 엄마가 큰 맘 먹고 모 스포츠브랜드 매장에서 세일품목도 아닌 노랑색 점퍼를 사주셨는데, 나는 신입생 OT부터 시작해서 점퍼를 입지 않는 계절이 될 때까지 1학년 1학기의 절반을 그 노란 점퍼만 입고 다녔다. 아랫도리는 중학교 때 산 스키니진(그때는 그 청바지 원단으로 만든 쫄바지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옷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때 살았던 동네는 작은 시장 옆에 있는 주택가였는데
엄마는 반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도 내 옷을 사오시곤 했다.
게다가 엄마는 옷 관리를 굉장히 잘 하시는 편이어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내 중학교 시절 옷 몇 벌은 여전히 새옷같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간 뒤로, 그 많은 옷들을 입을 수 있는 건 주말 뿐이었다.
엄마는 내가 노란 점퍼와 스키니진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학교에 가려고 하면
불호령을 내리며 옷을 다 벗기고 노란 점퍼와 스키니진을 입히셨다.
수업을 빠지는 한이 있어도 내가 내 마음대로 옷을 입고 나가는 꼴은 못 보셨다.
중고등학교 때는 소풍날 내 옷을 본 친구가
나중에 자기가 남자친구를 만날 때 옷을 빌려주면 안되겠냐고 하기도 했고
지금 봐도 촌스럽기보다는 귀여운 복고풍 정도로 느껴지는 옷들이니
옷이 안 예뻐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내 별명이 '노란 잠바'가 될 정도로 줄기차게 그 점퍼만 입었던 건
옷이 없어서도 아니고, 다른 옷들이 안 예뻐서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다른 여대생들보다 통통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살이 더 쪄서 뚱뚱하지만. lllOTL)
집안 형편에 대해서 거짓말은 안 하지만 참말 또한 안해서
사람들이 알부자인 줄 아는 우리 엄마.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고 공짜로 해외여행을 하게 된 딸에게
용돈이 최소한 백만원은 있어야 다른 애들 앞에서 기죽지 않을 텐데
나는 너에게 용돈으로 줄 백만원이 없다, 그러니 가지 말라며
대회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애는 안 간다고 하신 엄마.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 바꿔 말해 '허세쩌는' - 우리 엄마는
당신 딸이 가냘픈 대학생 여자애들 틈에서
그 아이들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비교당하는 게 죽기보다 싫으셨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집에 엄마 친구분들이 오신다고
손님이 가실 때까지 내 방에서 못 나가게 하신 적도 있다.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셨지, 화장실 가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셔서
화장실에 가다가 엄마 친구분과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그 뒤로 나는 완전히 엄마 친구분들 중 한 분의 장난감이 되었다.
사랑하는 딸이 집 밖에서 손가락질당할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잠이 깬다던 엄마가
왜 그런 짓을 하셨는지, 이건 아마 내가 죽었다가 환생해도 이해가 안될 것 같은데
내 존재가 들통난(...) 그날 이후로
엄마 친구분들이 집에 오시면 엄마는 과일 먹으라며 나를 부르셨다.
그러면 나는 엄마 옆에 다소곳이 꿇어앉아서
제일 작고 맛없어 보이는 조각을 포크로 찍어먹...으려고 하면
나를 장난감으로 삼은 그분이 내 손등을 따악 소리가 나게 때리셨다.
"그 덩치를 가지고 뭘 또 먹으려고! "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다른 친구분들이 어쩔 줄 몰라하시면
엄마는 그분과 함께 숨이 넘어가도록 웃으시곤 했다.
당신 딸 손등을 때리며 망신을 준 친구와 함께.
나는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빨간 손자국이 남은 손등을 다른 손으로 덮으며
속으로 바락바락 악을 썼다.
쓰레기! 인간쓰레기! 그러니까 당신이 아직도 시집을 못 간 거야!!!
그분은 자신이 원해서 결혼을 안 하신 게 아니라
동생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자기 인생을 찾으려고 보니
또래들은 다 큰 자식을 둔 부모가 되어 있더라... 이런 경우였는데
지금 성격 같으면 위의 말에 덧붙여 평생 남자 구경도 못 할 거라는 저주까지 했겠지만
그때는 아무리 학대 - 저게 정신적 학대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를 당해도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과일을 먹으러 오라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지금 바쁘다고 하면
친구분들이 가시기가 무섭게 엄마는 나에게
네가 남들 앞에서 나한테 망신을 주려고 작정을 했구나,
대학 물 먹여놓으니 엄마가 우스워 보이지, 이런 말을
다음날 동쪽 하늘이 밝아올 때까지 퍼부었다.
엄마 나름대로는 나에게 충격을 주어서 살이 빠지게 하고 싶었겠지만
엄마와 그 친구분이 충격요법을 한 번 실시할 때마다 쪽쪽 빠지는 것은
살이 아니라 내 자존감과 자신감이었다.
사람들이 너를 보면 혐오감을 느낀다는 엄마의 말에 세뇌당해서
나는 동아리 활동은커녕 가입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자식과 인형을 구분하지 못하셨던 것 뿐이지.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강제로 단발머리를 '당했'으니 머리도 기르고
예쁜 옷도 입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던
열아홉 살, 만으로는 겨우 17세 소녀였던 나는
엄마가 머릿결 상한다며 퍼머와 염색을 못 하게 하고
내 이마가 관상학적으로 잘났다며 앞머리도 못 내게 하고
살찐 사람이 긴 머리를 풀고 다니면 추잡해 보인다며 사다준 고무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봄과 가을에는 노란 점퍼와 스키니진,
여름에는 어두운 색 반팔 박스티와 라인이 전혀 없는 일자 반바지,
(그리고 엄마가 골라준 빌어처먹을 스포츠샌들!)
겨울에는 더플코트와 스키니진.
이것들 이외의 복장으로 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사실, 스키니진은 마른 사람보다는 오히려 통통한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이긴 하지만.)
집에서 입던 귀여운 옷을 입고 학교에 가려다가 엄마에게 들키면
너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하는지 아냐는 말과 함께
"살 빼고 나서", "살부터 빼고", "살 뺀 다음에"라는 조건이 붙은 그 옷들은
엄마 방 옷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3학년 때였던가.
같은 해에 입학한 친구가 휴학을 했다가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잠깐 학교에 왔는데
휴학을 한 뒤로 살이 쪄서 덩치가 두 배로 불어 있었다.
그 친구보다는 덜했지만, 입학했을 때보다 체중이 불어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엄마가 단식 - 최단기록 9일 - 을 시키셨는데
단식을 처음 '당했'던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 키가 단 1cm도 자라지 않았고
한번 단식을 '당할' 때마다 체중 10kg이 줄고 단식 후에 15kg이 불어났다.
하지만 날씬했을 때 자신감이 넘치고 여성스러운 옷을 좋아했던 그 친구는
나 같으면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을 몸이 되었는데도
변함없이 밝았고, 여전히 예쁜 옷을 입었다.
(하지만 요즘은 부인복 브랜드도 가장 큰 사이즈가 66인 경우가 많다. lllOTL)
그리고 그 친구는 그날 이후로도 가끔씩 학교에 놀러왔는데
고등학교 때 자기 교우관계를 관리하려는 어머니에게 어떻게 저항했는지,
버스 노선은 물론이고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자신이
어떻게 해서 부모님의 승용차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아빠도 없이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길러낸 엄마에게
효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친구의 저항과 그 결과로 얻은 자유에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차마 친구가 썼던 방법들을 그대로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부럽다고 느낀 순간부터
나 자신조차도 몰랐지만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매일 포니테일로 묶었던 머리를
웬만한 초딩 저학년보다도 어설프게 삐뚤빼뚤 가르마를 타서 양갈래로 묶고
(내가 내 머리를 직접 묶은 건 대학교에 들어가서부터였고
언제나 포니테일이었기 때문에 내 손으로 가르마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엄마가 집을 비웠을 때 몰래 시장에 가서 니삭스를 사고
엄마가 절대로 집 밖에서는 입지 말라고 하셨던 주름치마를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55사이즈가 되지 않는 한 다른 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로리타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며 로리타 브랜드 홈페이지들을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엄마에게 집에서만 입겠다고 약속해서 오월의 신부 원피스를 샀다.
(그때는 로맨틱 임부복이었지만 지금은 손색없는 컨츄리로리타 & 가네코 브랜드!)
친구들을 만날 때 오월의 신부 원피스를 질질 끌고 나가기도 하고
요즘 교복에 많이 쓰이는, 흔히들 버버리체크라고 하는 그런 체크무늬 치마에
가터벨트를 길게 내려서 스타킹 대신 오버니삭스를 신고 나가기도 했는데
(가터벨트는 일단 써 보면 정말 훌륭한 발명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19금 소품으로 굳어져서 안타깝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품질의 가터벨트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ㅠㅠ
팬티스타킹은 방광염을 유발할 수 있고
밴드스타킹은 가끔 멍까지 들 정도로 아픈 주제에 줄줄 내려간다고!!!)
내 친구들은 이건 뭐 날개 제거수술을 받은 천사인지 ㅠㅠ
단 한번도 같이 다니기 쪽팔린다, 네 몸매를 생각해라 운운하지 않고
"너답다" 하며 씨익 웃고는 언제나 신나게 같이 놀아 주었다.
아마 내가 보닛까지 쓴 풀로리타 차림이었더라도
그냥 "너답다" 하고는 재미있게 놀았을 것 같다.
보고 싶다, 친구들아... 어흐흐흑 ㅠㅠ
이거이 보닛(bonnet).방학마다 단식을 '당하고' 체중이 불어서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77사이즈였는데
그때 생산된 77사이즈 옷들을 최근에 나온 88사이즈 옷에 대 보면
예전 77사이즈가 요즘 88사이즈보다 약간, 아주 약~간 크다. =ㅂ=
작은 사이즈만 생산되는 것도 문제지만 옷 자체가 작아지고 있다. 시밤!!!
빅사이즈만 그런 게 아니라, 날씬한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몇 년 전에 나온 옷과 최근에 나온 옷을 대보면
같은 사이즈라면 요즘 옷이 훨씬 작다고 한다.
빅사이즈 여성복을 사러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성복 빅사이즈는 구매경험이 없어서 모르겠다능... ㅜㅜ)
원단이 대부분(마음 같아서는 '하나같이'라고 하고 싶지만) 거지같다. 그런 주제에 비싸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가면
- 정말로 '조금 더'다. 빅사이즈 보세의류 가격은 백화점 세일상품과 거의 차이가 없다.
원단값이 많이 들어서 비싸다고 하기에는 원단 질이... 으허허허 -
백화점 부인복 브랜드는 77을 생산하는 곳이 별로 없다!!!
대학 졸업하고 반년 동안 활동형 외톨이(은둔형 외톨이 전단계;;) 생활을 했는데
그동안 면접은 수십 번 봤지만 면접관들의 행동은 마치 짠 것처럼 똑같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보는 면접이든, 한 번에 한 명씩 보는 면접이든
나에게는 이름만 확인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아, 호텔 룸메이드로 지원했을 때는
밑도끝도 없이 면세점 타령을 하면서 대화를 좀 했다.
(정확하게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면세점은 경쟁률이 센데..."
누가 면세점에서 일하고 싶댔냐고!!!)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취업을 했는데, 알고 보니
사장 바다진주로마(sea pearl Rome)가 병적으로 여자를 밝혀서
내 외모라면 껄떡대지 않으리라 생각한 임원이 합격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뇌가 해면체로 이루어진 그 리틀JMS(...)는 나한테도 껄떡대더라능.
어쨌거나 내 힘으로 돈을 벌게 되어서
(내가 번 돈을 내가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밤중에 회사 건물 옥상에서 내 목숨을 담보로 엄마와 협상을 했다능.)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옷을 지르기 시작했다. 앞머리도 내 보고.
그런데 내 돈 주고 내 옷 사겠다는데 안 팔더라(......)
옷가게에 들어가려는데 점원이 뛰어나오더니
두 팔과 두 다리를 한껏 벌려 출입구를 막고
(대자로 뻗은 사람을 냉동시켜서 그대로 세워놓은 것 같은 자세로)
"사이즈 없어요!" 라고 포효-_-한 적도 있고
옷가게에 들어가는 건 성공했는데
의자에 앉아서 노닥대던 점원들이 한 명도 일어나지 않고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어떻게 오셨어요?" 라고 한 적도 있고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성공했고 점원이 손님으로 대해줘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몸에 맞는 옷이 없는 것 같아서 나가려고 하니 붙잡으면서
"언니, 이거 입어봐. 들어갈 거야. 이거 신축성 좋거든?" 이런 적도 있고
(들어만 가면 뭐하냐! 나는 바디페인팅이 아니라 옷을 원하거든?)
마음 편하게 인터넷으로 지르려고 여성복 빅사이즈 카테고리에 들어갔더니
죄다 66을 빅사이즈라고 처올려놓은 현실에 절망하고...
이런 일은 77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66만 되어도 겪어보셨을 테니 생략하고
기타등등 수없이 많은 삽질을 거쳐 임/부/복 공략 루트로 들어갔다.
대학교 때, 오월의 신부 원피스를 입고 버스에 탔는데
빈 자리가 생겼는데 중년 아주머니께서 자리에 안 앉고 내 눈치를 보신 적이 있었다.
만삭 임산부인 줄 아셨던 게지. ㅡㅡ;;;
그때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 곱씹어보니 서럽고 그랬는데
바다진주로마 사장 밑에서 살아남으려고 온갖 아첨을 다 하면서 한해 두해 굴렀더니
남이 나를 임산부로 생각하고 빈 자리 앞에서 망설이면
온화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하고 조신하게 앉아주는 내공-_-이 생겼다.
내추럴 본 원피스 오닥구(=otaku;;;)인 나에게
허리둘레가 한없이 여유로우면서 귀여운 디자인도 많은 임부복은
그야말로 신천지, 어제 갓 그린벨트가 풀린 땅이었다.
그런데 이 신대륙도 한 1년 되니까 발을 붙일 곳이 없더라.
뱃속에 새 생명을 품으면 배 뿐만 아니라 가슴도 커지고
전체적으로 살이 붙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
그런데 왜 요즘 임신복들은 가슴둘레와 어깨너비가 55사이즈인가영? 'ㅅ'
하긴 요즘 예비엄마들은 하나같이 배와 가슴만 커지더근영. ㅜㅜ
그래도 가슴은 커지는데 왜 임신복 가슴둘레가 55사이즈인가효? 왜? 왜? 왜왜왜왜!?
시밤쾅 대한민국 의류업계는 나를 미워해 lllOTL 이러면서 좌절했는데
그림의 떡이지만 눈보신이나 하자  ̄ㅠ ̄ 이러고 들어간
로리타 브랜드 메타몰 홈페이지에서
내 사이즈에 맞는 원피스를 찾았다!!!!!!!
(여기서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가 나와야 하는데... ㅠㅠ)
세일상품이고 해외배송을 해줘서 눈 딱 감고 질렀는데
(작아서 못 입으면 로리타 커뮤니티 장터에 내다팔 생각으로;;;)
EMS 운송비와 관세까지 물어도 빅사이즈 보세의류보다 싸서 존니스트 충격.
※ jonna - jonnier - (the) jonnest
세일 안하는 옷도 우리나라 백화점옷 세일가격보다 싸고
실물을 받아보니 백화점옷 퀄리티라서 더더더 충격.
그래서 로리타질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커뮤니티 게시판과 회원들 블로그를 둘러보면 '로리타질'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로리타 양복은 그야말로 전투복이다.
날씬하고 예쁜 사람이 입고 다녀도 쏟아지는 시선, 필터링되지 않은 말들, 손가락질...
사진을 보면 상큼하고 귀엽기만 한 소녀들인데
로리타를 입고 다니다가 사람들의 품평회에 질려서 우는 소리를 하는 글이
로리타 커뮤니티에는 잊을 만하면 올라온다.
그런데 나는 빅사이즈다. 이 땅에서는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죄가 되는 빅사이즈.
게다가 화장하면 다음날 멍게가 되는 몹쓸 피부 때문에 쌩얼로 다닌다.
(평생 화장품이라고는 자기 스킨로션밖에 만질 일이 없는
그런 평범한 남자가 쌩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은
화장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가장 고난이도의 화장술로 빚어낸 작품이다.)
그런데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내 음험한 성격과
시선을 끌어모으는 로리타 양복이 접촉하여 일으키는 화학반응은
아주 기묘한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지금에 비하면 여리여리했던 '노란 잠바' 시절에는
남이 나를 쳐다보면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내 시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내 등에다 대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욕을 하는 것 같았는데
로리타 양복만 입으면 말 그대로 근자감이 쩔어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옷이 예뻐서, 자기들도 이런 옷을 갖고 싶어서
부러워서 쳐다보는 것 같고 (실제로 어디서 샀냐는 질문도 몇 번 받았고)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웃어도
네 수준은 그것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인 거다.
내 외모 때문에 옷이 아깝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이 모자란 거지만
내 행동 때문에 옷이 아깝다는 소리를 듣는 건 싫으니까
허리도 쭉 펴고, 걸을 때 무릎 안쪽이 서로 스치도록 일자로 걷게 된다.
땅바닥에 돈 흘린 사람처럼 구부정하던 '노란 잠바' 시절과는 천양지차.
언젠가 타임머신이 상용화되어서 열아홉 살, 대학 신입생 시절로 돌아가
'노란 잠바'였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백설탕마냥 처달달한 로리타 원피스를 꾹꾹 눌러담은 이민가방 하나 안겨주고
네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반짝반짝 빛나는지 아니?
너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지 말렴.
그들의 손가락 하나는 너를 향하고 있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그들 자신을 향하고 있단다.
이런 고리타분한 멘트 한번 날리면서 꼬옥 껴안고 토닥토닥해주고 싶다.
그리고
5년 안에 머리숱이 1/4로 줄어들 테니 관리 잘해라.
앞머리를 내면 이마에는 화장을 하지 말아라.
땀나는 여름에는 무조건 이마를 까고 살아라.
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또
이 이야기는 어디다가 끼워넣어야 할지 몰라서 줄줄 써내려왔는데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남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나 때문에 혐오감을 느낄까봐
후덜덜덜 떨면서 박스티, 점퍼, 청바지만 입고 산다고 욕 안먹는 거 절대 아니더라.
대학에서 내 면전에 대고 언어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없었지만
뒤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더러운 말이 오갔을지 상상도 안 간다.
(하지만 면전에서 언어폭력을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른 빅사이즈 분들에 비해 나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좋아서 사귄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우리 과 선후배들이 나를 찾아와서
"너 남자친구 있다면서?", "언니 남자친구 있다면서요?"
이러면서 내 얼굴에 자기들 얼굴을 들이대고 뚫어져라 관찰하고는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키들키들 웃음소리를 꼬리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나날이 반복되면서 '별 할짓없는 것들도 다 있네' 라고 적응할 때쯤
어느 선배언니가 나를 불러서 진심이 묻어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지하철 안에서 - 지하철 역도 아니고 지하철 차량 안에서 -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는 걸 봤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대충 곡괭이질을 해본 결과, 소문의 발단은 '남자친구가 생겼다'.
→ 저 쌍판에, 저 떡대에 어떻게 사지멀쩡한 남자를 물었을까
→ 암퇘지가 덮쳤을 거다
→ 맞다. 여관에서 나오는 걸 내가 봤다
→ 아무리 그래도 남자한테 약점이 없으면 하룻밤으로 못 끝내고 사귈 이유가 없다
→ 암퇘지가 새끼를 밴 게 분명하다
→ 맞다.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걸 내가 봤다
(남자친구랑 산부인과에 간 적도 없지만, 가임기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걸
오로지 임신과 낙태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니 불쌍한 인생들.)
→ 오늘 수업 끝나면 상견례 한다더라
→ 상견례는 벌써 했고 오늘은 혼인신고하러 간다더라
→ 식은 새끼 까고 나서 올린다더라
→ 새끼 깔 때까지 휴학한다더라
...... -_-
소문의 줄기와 굵직굵직한 가지들에 비하면
지하철 차내 키스 정도는 여리디 여린 곁가지에 지나지 않더라능. ㅅㅂ
그래서 결론은
입고 싶은 옷 마음대로 입읍시다.
남 눈치 보면서 시커먼 직사각형 천쪼가리 걸치고 살아봤자 욕 안먹는 거 아닙니다.
VIVA LOLITA!!!!!!!
# by | 2008/08/18 13:29 | 잡담낙서 | 트랙백 | 덧글(14)













